“흥…….”

레이저는 울렁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서둘러 소녀 곁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얼굴 가까이 다가가자 소녀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소녀는 목에 난 상처를 부여잡고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소녀를 부축한 레이저가 다급하게 물었다.

“꼬리를 이용해 그자에게서 도망쳤어요…….”

갑자기 긴장이 풀렸던 것일까, 소녀는 무기력하게 레이저의 품안에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선생님이……가르쳐 주신대로요.”

레이저는 여전히 마음을 놓지 않은 채 쉰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단 한 번도 칼에 몸을 던지라고 가르친 적이 없다.”

“하지만 제가 피를 흘리지 않았다면 그자는 방심하지 않았을 거예요.”

소녀는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는 남자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전 괜찮아요……제가……잘 해냈나요, 선생님?”

그 익숙하고도 친근한 선생님이라는 말에, 레이저는 겨우 긴 한숨을 내뱉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그는 마치 탈진한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또 다시 소녀에게 구원받게 될 줄이야.

“미안하다.”

“왜, 왜 사과하시는 거예요? 잘못한 건 분명 저……”

레이저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소녀를 껴안았다. 온힘을 다해 품에 꼭 끌어당겼다. 소녀가 다시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질까 두렵기라도 한 듯.

“미안하다.”

그는 그저 계속해서, 그 한 마디를 반복할 뿐이었다. 쓰디쓴 고통이 서린 목소리였다.

“미안하다…….”

소녀는 레이저가 왜 사과하는 것인지 알 수 없어서 묵묵히 입술을 깨물었다.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자신의 감정 때문이 아니라 남자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슬퍼서, 마음이 아파왔다.

뺨을 남자의 가슴에 댔다. 고개를 들자 잔뜩 일그러진 미간, 창백하게 질린 입술, 조금씩 부르르 떨리는 속눈썹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귓가에선 미친 듯이 뛰는 심장소리가 느껴졌다.

그는 자신보다도 더 두려워하고 있었다. 소녀는 마침내 그 사실을 깨달았다.

소녀는 피로 물든 작은 손을 내밀어, 따뜻하게 남자의 몸을 감싸 안았다.

남자는 깜짝 놀라 숨을 들이켰지만, 곧바로 침착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욕심스럽게 소녀를 더욱 꽉 끌어안았다. 그녀에게서 더욱 많은 온기를 받길 바라듯.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한 참이나 기나긴 포옹에 빠졌다.

눈앞의 남자는 소녀에게 여전히 낯설었지만, 그리고 여전히 믿을 수 없는 구석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그와의 포옹은 기묘할 정도로 그리워서, 그를 밀어내고 싶지 않았다. 그를 믿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감정이 대체 어디서 샘솟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지금 두 사람의 행동이 위험한 경계를 넘었다는 걸, 소녀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그녀는 레이저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소녀의 눈에 비친 것은 온통 상처투성이가 된 연약한 영혼이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뒤섞이기 시작한 두 사람의 체온을 느꼈다.

얼마나 지났을까, 소녀는 자신이 어디에 있었던 건지도 잊어버렸다. 세상이 사라져갔다. 남은 거라곤 서로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두 영혼뿐. 차분하고 고요한, 짧은 영원에 도달했다.

그녀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다. 잘못된 건 없었다. 뱀신이 단 한 번 그들을 위해 내려준 기적 같은 순간이라고,

적어도, 소녀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