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킬은 콧방귀를 뀌며 조롱을 대신했다.

“뭐, 나는 오히려 아가씨가 이미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고 생각하지만.”

샤킬은 조용히 밧줄을 잡아당겼다. 두 사람의 거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정답을 알려주도록 하지. 아가씨네 부모는 몸값을 내지 않았어. 내일 교섭할 상대는 야민 가의 시드니 님이야.”

소녀의 두 뺨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마치 숨이 탁 막힌 듯한 얼굴이었다.

이렇게 되리라 진작 예상했었지만, 샤킬의 선고를 직접 듣게 되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럴 리가 없어요…….”

“현실을 받아들여. 바깥에선 후안 가가 준비를 다 마쳐놨다고 떠들고 다녔지만, 실제론 물밑에서 계속 사람을 보내 시간을 연장해달라고 부탁했다. 반대로 시드니 측에선 후안 가의 움직임을 전해 듣곤 돈을 모으는 걸 서둘렀지. 헛수작을 부리다 일을 망친 셈이라고.”

“그, 그럼 부모님께 시간을 좀만 더 주세요!”

그녀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시간을 더 줘봤자 아가씨 계획대로밖에 흘러갈 뿐인데? 그래서 이제 경매를 끝내기로 결정했지.”

“계획이라니? 대체 무슨ㅡ”

“그날 방직 공방에서 불이 난 건, 누가 일부러 불을 질렀기 때문이잖아?”

샤킬은 소녀의 턱을 콱 붙잡았다. 술냄새가 섞인 입김이 소녀의 볼에 닿았다. 그는 매번 이런 식으로 행동했다. 당장 박장대소하다가도 순식간에 태도를 바꿔 날카롭게 위협을 가했다. 그의 돌변하는 태도에 낚여 진심을 말해버릴 뻔한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소녀는 깨달았다. 샤킬은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일일수록, 오히려 그걸 이용해 남을 윽박지른다는 걸.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소녀는 잡아떼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물어보고 싶은 게 있군. 아가씨가 걸치고 있던 장신구들은 어디로 갔지? 어디선가 일부러 떨어뜨려 표시를 남기기라도 했나?”

샤킬은 냉소했다.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졌어도, 죽음의 예감은 여전히 둘 사이를 휘감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봐. 그날 불을 지른 건 대체 누구였나? 그동안 아가씬 분명 누군가를 만나고 왔겠지.”

소녀는 잔뜩 긴장한 채 침을 꿀꺽 삼켰다. 샤킬의 기세에 맞서 싸워야 했다. 그녀는 강렬한 분노로 두려움을 억누른 채,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만약 제가 누굴 만났다면 다시 여기로 돌아왔겠어요? 설마 무서운 건가요, 샤킬? 바깥에서 그림자가 일렁일 때마다 설마 카멜레온인가 생각하기라도 했나요?”

“웃기는 소리. 갑옷이나 걸쳐야 겨우 내게 맞서려 드는 놈을 내가 두려워할 것 같아!”

샤킬을 이를 갈면서 엄청난 분노를 쏟아냈다. 하지만 자신이 움켜쥐고 있는 소녀가 혹여나 다칠까 그는 곧바로 이성을 회복하고 손을 뗐다. 소녀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기침하기 시작했다.

“왜 그랬죠? 당신은……아직 왜 절 죽이지 않았는지 말해주지 않았잖아요.”

소녀는 콜록거리며 말했다.

샤킬의 이글거리는 눈빛은 그저 분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왜냐면 난 진심으로 아가씨가 맘에 들기 때문이지, 다이애나. 그래서 아가씨가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줬으면 한다고.”

샤킬은 다시 장난스레 웃으며 경박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아가씨네 부모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못미더운 자들일 줄은 몰랐지만 말이지. 그래도 말이야, 아가씨가 내게 안기겠다고 작정하면 해가 뜨기 전에 마음을 돌려서 아가씨 목숨을 시드니에게 넘기지 않을 수도 있다고?”

“당신은 저뿐만이 아니라 시드니도 가지고 놀고 싶어 하는군요.”

소녀는 자신의 목을 부여잡은 채, 고개를 들어 그를 노려봤다.

“당신이 상황 판단도 제대로 못할 미치광이도 아니니까요. 그 말은 ‘의뢰자’가 따로 있다는 뜻이겠죠. 당신은 후안 가를 파멸시키려는 것과 동시에 야민 가도 무너뜨릴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죠?”

“휴, 구혼은 진심이라니까. 정말이지, 왜 그렇게 못 알아먹는 거야?”

그는 크게 탄식을 내뱉었다.

“진짜 의뢰인은 누구죠? 앤드류? 세실리아? 아니면, 그 밖의 사람인가요?”

샤킬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그에게선 보기 드문 침묵이었다, 소녀는 드디어 그를 꿰뚫어본 것 같았다. 진상을 알아낼 기회는 지금뿐이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샤킬 앞에 꼿꼿이 섰다.

“지금 확실히 해두겠어요, 샤킬. 만약 내일 죽어야만 한다면, 차라리 칼이 심장을 찌르는 걸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말겠어요. 머리에 씌울 자루 따윈 필요 없어요. 어둠 속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을 감고 싶진 않아요.”

그녀는 또박또박 분명하게 말했다.

“일은 이렇게 됐어도 전 당신을 숭고한 전사라고 생각해왔어요, 그러니 제 심정을 이해해주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