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겐과 크무트는 침중한 얼굴로 다이애나의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다이애나의 상처는 시녀장의 치료를 받아 잘 처리한 뒤였다. 시녀장은 대역에

관한 비밀을 알고 있는 극소수의 하인 중 하나였다. 그녀는 입도 벙긋하지 않고

맡겨진 일을 수행했다. 그리고 가주의 동의를 얻고 난 뒤 조용히 방을 떠났다. 레

이저의 말대로, 하사드는 다이애나의 목덜미에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고, 고작 가

벼운 상처만 입혔다. 하지만 완전히 회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그전까진 그녀

의 목덜미에 숨길 수 없는 흉터가 남아 있을 터였다.

가주 내외는 말없이 깊이 잠든 다이애나를 쳐다보면서, 한편으론 이후의 계획

을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레이저 곁에 선 3호는 가시방석에 앉은 듯 불안감을 내비쳤다.

“언제부터 하사드를 주목하고 있었지요?”

잉겐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어왔다.

“몇 달 전부터였습니다. 일전에 진짜 아가씨와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놈이 의혹을 품은 것 같았습니다.”

“다이애나는 늘 3호가 수업을 마친 뒤에야 방에서 나와 식사를 했었지……. 그

사이에 하사드와 마주쳤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소.”

크무트는 골치 아픈 표정으로 고민했다.

“하지만 이제 곧 연회가 열릴 것이라는 게 문제요. 벌써 두 번이나 사고가 벌어

졌으니 이미 소문이 퍼질 대로 퍼졌겠지.”

“기다려 봐요. 중요한 건 그놈이 누구랑 마주쳤냐는 게 아니잖아요.”

크무트의 말을 자르고 끼어든 잉겐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우리의 계획이 생각보다 허술했다는 거예요. 그러니 의심을 사게 됐겠죠. 그렇

지 않나요?”
 

“음…….”

“그렇지 않냐구요?”

잉겐이 언성을 높였다.

“당신 말이 맞소, 부인.”

크무트는 탄식했다.

“레이저. 하사드가 대역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의심을 품은 뒤부터 3호의 행동과 버릇에 주목하더군요. 마침 최

근 가문들 사이의 정보가 비싸게 팔리고 있으니, 하사드가 욕심에 눈이 멀은 것

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놈은 로비로 도망치는 대신 침실로 향했어요. 우리 아이까지 인질로 잡았다

고요. 그 평민 놈이 정보만을 수집하려고 했을 리가 없잖아요!”

잉겐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그 당시 로비엔 가주님과 병력들이 있었습니다. 놈은 아마 후문이나 다른 출구

를 찾아 헤매다가 우연히 침실 쪽으로…….”

크무트가 씩씩거리며 끼어들었다.

“우연히?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가? 배후에서 놈을 도운 시종이 단 하나도 없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나? 침실로 향하는 길을 알고 있는 시종은 많지도 않단 말일

세!”

“자자, 크무트. 진정해요. 그 시녀들은 조만간 모두 정리할 생각이에요. 그중 누

군가 정말로 정보를 누설했다고 해도, 얼마 안 있어 우리 후안 가엔 아무런 영향

도 미치지 못할 거예요.”

부인은 크무트의 손등을 토닥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 그제야 크무트도

언성을 낮췄다.

“흥……그렇다면 좀 더 앞당겨서 정리해버려야 할 텐데.”

“일단 진정하세요. 연회가 끝나면 다시 얘기하죠. 요 며칠이 고비니까요.”

레이저는 두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는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정

리라. 말이 좋아 정리지, 정확히 말하자면 살인멸구를 하겠다는 뜻이 아닌가. 가

주 내외는 왕위 쟁탈전이 시작할 때부터 그런 뒤가 구린 일에 대한 모든 준비를

끝마쳐두었다. 돈 따윈 문제가 아니었다.

“이 일에 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기로 하지.”

크무트는 억지로 표정을 관리하면서 흥분을 가라앉혔다.

“또 하나. 3호, 연회가 열리는 날에 반드시 참석하거라. 알겠느냐?”

“네.”

그녀는 재빨리 자세를 바로 고치며 대답했다.

“그걸로는 부족해요.”

잉겐은 고개를 내저으며, 히스테릭한 목소리로 말했다.

“3호. 앞으로 넌 다이애나야.”

잉겐의 말에 3호는 잠시 멈칫했다. 그녀는 레이저를, 그리고 크무트를 돌아보았

다. 그 말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이해를 하지 못한 눈치였다.

“오늘부터, 후안 가에는 3호란 아이는 없어. 오직 다이애나, 그리고 다이애나만

있을 뿐이다.”

크무트는 눈을 감은 채, 잉겐의 명령을 되풀이했다.

“대역 역할을 철저히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이제부터 넌 자신을 포기하

고, 완벽한 대역이 되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