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했어.”

그것은 후안 가로 돌아온 소녀가 다이애나에게서 들었던 첫 마디였다.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말이었다. 그저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소녀를 향한 의례적인 감사 인사일 뿐. 그것 말고는 다이애나의 얼굴에서는 다른 의미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가주 부부는 방 한쪽에 기대어 쉬고 있었고, 레이저는 다이애나의 뒤에 선 채 두 소녀가 대화를 나누는 걸 지켜보았다. 똑같은 파자마를 입은 두 사람은 마치 거울에 비춘 것처럼 닮아 있었다. 소녀는 가장 먼저 다이애나의 목덜미를 바라보았다. 흉터는 이젠 거의 보이지 않았다. 소녀는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돌아온 걸 환영해준 사람들이 많았나 보네.”

다이애나도 소녀의 몸을 훑어보면서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네, 아가씨. 기뻐서 우는 시녀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몰라요.”

소녀는 빙그레 웃었다.

다이애나는 그 말에 살짝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간혹 그녀도 자신의 대역을 바라보며 즐거워할 때가 있었다. 표정이 조금 누그러진 다이애나는 다시 소파의 쿠션에 몸을 묻었다.

“무사히 돌아와서 정말 기쁘구나, 다이애나.”

크무트가 시기적절하게 끼어들었다.

“그동안 레이저는 각 가문의 동향을 조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네가 직접 샤킬에게서 일프가 납치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말하더구나. 정말이더냐?

소녀는 화들짝 놀라 뺨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샤킬에게서 정보를 캐내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소녀는 결국 아무것도 알아낸 게 없었다. 모든 건 레이저가 직접 밝혀낸 것이었다. 그 탓에 원래는 질책을 받을 것이라고 짐작하며 마음의 준비까지 끝낸 상태였다. 그런데 레이저가 그 공을 자신에게 돌릴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레이저는 대체 무슨 속셈인 걸까? 내게 은혜를 베푸는 걸까, 아니면 뭔가를 숨기려는 걸까?

“원래 계획대로라면 저 아이를 일찍 빼돌릴 계획이었습니다만, 자발적으로 샤킬 곁에 남겠다고 하더군요. 덕분에 일프가 배후에 있다는 사실까지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레이저는 얼굴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말했다. 말투도 미리 연습하기라도 한 듯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소녀는 불편한 마음으로 그저 고개를 푹 숙일 뿐이었다. 하지만 가주 부부는 소녀를 보며 되레 미소를 지었다.

“장하구나. 어느새 이렇게 성장하다니 말이야.”

잉겐은 기특하다는 듯한 말투로 쉬익- 소리를 내며 웃었다.

“가, 감사합니다, 부인.”

“샤킬은 믿을만한 자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일프가 샤킬의 야심을 이용해 우리 관계를 이간질시켰던 모양이오.”

크무트는 턱을 매만지며 사색에 잠겼다.

“어쩌면 샤킬에겐 자신의 위치를 확고하게 다질 자금이 필요하다는 걸 알아차렸을 지도 몰라요.”

잉겐은 어깨를 으쓱였다.

“저흰 몇 번이고 샤킬의 청탁을 거절했잖아요……하지만 고작 그 정도 금액 때문에 우리들과의 우애를 배반하진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찌 됐건, 일프가 이번 사안에서 가장 큰 이득을 봤다는 건 확실하오. 아무도 그가 납치 건과 연루되었다는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 기회를 틈타 시드니가 팔아넘긴 사업들을 흡수하기까지 했으니 말이오. 몸값은 받지 못했겠지만 그자에겐 본전치기나 다름없지.”

크무트는 가볍게 웃으며 이빨을 살짝 드러냈다.

“일프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해봐야겠지만 지금 당장은 힘들 것 같소. 아직 놈의 약점을 확실하게 잡지 못했으니.”

“여보, 일을 질질 끌다간 우리 체면이 말이 아닐 거예요. 최대한 빨리 반격해야 한다구요.”

잉겐은 애달픈 목소리로 호소했다.

“그 정도야 알고 있소, 당연하지.”

크무트는 손을 내저었다. 그가 뭔가 노리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는 그저 딸아이 앞에서 계산적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밤이 늦었으니 진지한 얘기를 계속하는 건 적절하지 않잖소. 그보다 내일 일정에 대해 알려주도록 하지. 내일은 다이애나를 위해 연회를 열 생각이다. 하인들도 모두 부를 예정이고, 일단은 다이애나가 무사히 돌아온 걸 기념하는 행사이니ㅡ”

그렇게 말하곤 크무트는 소녀를 돌아보았다.

“너는 그동안 조금 쉬도록 하거라.”

“뱀신이여, 감사합니다. 드디어 방밖으로 나올 수 있겠네요.”

다이애나는 크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럼 일찍 잠자리에 들거라, 얘야. 우린 먼저 돌아가 보마.”

가주 부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남은 사람들은 간단히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소녀는 가만히 서 있는 레이저를 놀란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이렇게 갑자기 이야기가 끝날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레이저는 분명 이번 사안에 대해 대부분 보고했지만, 일프의 계획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은 경고하지 않았다.

이는 분명히 비정상적이었다.

‘보고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보고할 생각이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