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부들거리면서 다시 일어나려고 했지만 몸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레이저가 자신을 지켜주기 위해 앞으로 나서는 걸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레이저는 전속력으로 샤킬의 품속으로 뛰어들어 검으로 발톱을 튕겨냈다.

레이저는 샤킬이 칼을 버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도마뱀 일족은 자신의 전투력을 맹신했다. 때문에 무기 한 자루를 제외하면 다른 무기를 예비로 갖고 다니는 경우가 없었다. 칼이 없더라도 그들에게는 여전히 발톱이 있었고, 어쩔 땐 발톱을 휘두르는 것이 훨씬 손쉬운 싸움법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게 바로 레이저가 바라던 것이었다. 칼이 없다면 샤킬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으니까.

발톱과 칼날이 맞부딪히며 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샤킬은 계속 으르렁거리면서, 두 손을 쉴 새 없이 레이저를 향해 휘둘렀다. 둔중한 검 대신 손톱을 무기로 삼자 훨씬 쉽게 균형을 유지하면서 민첩하게 움직여댔다. 레이저가 발톱을 막아내는 걸 버거워하기 시작한 순간, 샤킬이 꼬리를 휘둘러 레이저의 손목을 후려쳐 검을 떨어뜨렸다.

레이저는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자세를 낮추고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눈앞의 도마뱀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칼도 없는 네놈이 이제 뭘 할 수 있지?”

샤킬이 오른손 손톱을 세우며 레이저와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손톱을 휘두를 때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일격에 족히 가슴께를 찢어발길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힘이었다. 레이저는 가능한 한 몸을 적게 움직이며 공격을 빗겨냈고, 최대한 샤킬과 근접전을 벌이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동시에 거리를 좁혀 빈틈을 노릴 기회를 찾아야만 했다.

레이저의 팔뚝에 숨겨두었던 암기가 반짝였다. 샤킬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과 동시에 레이저는 샤킬의 손목을 힘껏 그어냈다.

공격이 먹혀들었다.

손가락 사이에 끼운 단검이 샤킬의 손을 베어내 피범벅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강렬한 격통이 순간 샤킬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는 손목을 움켜쥐고 고통어린 비명을 내질렀다. 그는 제자리에서 뻣뻣하게 굳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끝을 도저히 통제할 수 없었다.

“놈을 붙잡아!”

레이저는 소녀에게 명령을 내렸다. 소녀는 즉시 뒤에서 샤킬의 멀쩡한 손을 움켜잡았다. 레이저가 칼을 휘둘러 샤킬의 두 손의 인대를 잘라냈다. 그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전의는 꺾이지 않았지만,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는 것만으로 이미 모든 기력을 써버리고 말았다.

레이저는 땀을 주르륵 흘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방심할 틈이 없었다. 그는 곧바로 칼을 식은땀이 흐르는 샤킬의 목덜미에 들이밀었다. 그리고 안색이 파랗게 질린 도마뱀 일족과 눈을 마주했다.

“네……놈……!”

“당신이 졌어요.”

소녀는 샤킬이 달려드는 걸 막기 위해 샤킬의 꼬리를 짓밟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샤킬은 인대가 잘린 고통으로 인해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젠장! 아가씨가 진짜 다이애나가 아니라고? 그렇다면……난 대체 누구한테 구혼을 한 거지?”

샤킬은 숨을 크게 헐떡이며, 억울한 표정으로 소녀를 노려보았다.

“이 녀석한테 구혼을 한 거냐?”

레이저가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놈이 알 바냐! 질투라도 하는 건가, 카멜레온?”

레이저는 대답하는 대신, 힘껏 샤킬의 복부를 걷어찼다. 어찌나 세게 찼는지 샤킬은 고통으로 인해 몸을 앞으로 숙이며 입을 열지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