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합격한 건가요?”

그녀는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였다.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몸을 숙여 땅바닥에 널브러진 음식들 사이에서 암기를 주웠다.

“제한시간은 지원군이 달려오기 전까지. 그 시간 안에 날 쓰러뜨리거나, 시간을 끌어야만 한다. 하지만 암살자들은 대부분 첫 암살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면 즉시 도망칠 궁리를 한다. 그러니 서둘러 반격에 나설 필요 없이 시간을 끌어도 좋다. 무슨 뜻인지 알겠나?”

“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테스트 합격이라는 뜻이겠지? 그녀는 속으로 몰래 생각했다.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좋아, 식사해라.”

남자의 말을 듣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음식들은 이미 모두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고, 남은 건 고작 따뜻한 차 한 잔뿐이었다. 그녀는 입술을 핥으면서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런데 차에 섞여 있던 매콤한 향신료가 목구멍을 강타했다. 사레가 들려 쿨럭대던 그녀는 아예 바닥에 엎드려 미친 듯이 기침하기 시작했다.

“아가씨!”

“차, 차가…… 콜록, 콜록!”

시녀장이 서둘러 뛰어와 그녀의 어깨를 부축했다. 얼마나 기침을 해댔는지 연보랏빛 피부가 빨갛게 물들 정도였고, 고통에 못 이겨 눈물까지 주르륵 흘러내렸다.

“음, 잊은 게 있군. 식사 중엔 절대 음식에서 눈길을 떼지 마라. 한번이라도 놓쳤다면 절대 입에 대선 안 된다. 알겠나?”

남자가 손바닥을 펼치자 새빨간 가루가 손에서 천천히 흘러내렸다

“콜록ㅡ, 알겠습……콜록!”

“내가 독약을 넣었다면 넌 이미 죽은 목숨이었어. 유감이로구나. 이번 테스트는 불합격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는 깜짝 놀라 고개를 치켜들었다.

“하, 하지만 방금 전엔―!”

“합격한 건 시녀장이다.”

남자는 그녀를 흘깃 쳐다본 뒤, 조용히 문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울음을 터뜨리면서 시녀의 품속에 축 늘어지고 말았다.

“아가씨, 새 식사를 곧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얼른 드셔야지요. 오후에도 바쁘시니까요.”

“아가씨라뇨……전 그렇게 불릴 자격이 없어요…….”

시녀장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곧바로 미소를 띠었다.

“당신은 제게 영원한 아가씨인걸요. 걱정하지 마세요.”

시녀장의 말에 그녀는 정신이 번뜩 들었다. 자신이 내뱉은 말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시녀장은 내색하지 않고 가볍게 그 사실을 깨우쳐준 것이다. 그녀는 코를 훌쩍이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짐짓 거드름을 피우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알면 됐어. 얼른 새로운 아침 안 올리고 뭐하는 거야?”

“네, 아가씨. 잠시만 쉬고 계십시오. 금방 준비하겠습니다.”

시녀장은 환한 미소를 짓고 서둘러 방을 나섰다.

시녀장이 멀리 떠난 걸 본 그녀는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거의 흐느끼듯 신음소리를 흘렸다. 또 한 번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던 자신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기습이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진짜 암살자들은 선생님처럼 사정을 봐줄 리가 없다. 방금 전 전투 도중 선생님은 가진 무기의 절반도 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덜덜 떨어대고만 있었다니.
 

“난 정말……쓸모없어…….”
 

그녀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그리고 차라리, 방금 전 찻잔에 든 게 진짜 독이었더라면, 하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