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저는 다시 예랑 바자르로 돌아왔다. 그는 더욱 은밀하게 숨겨진 양탄자 가게로 들어갔다. 겉으로는 다른 가게였지만 결국 본질은 똑같았다. 정보상들은 시장에 즐비했다. 특히 왕위 쟁탈전 시기엔 더욱 활발하게 움직였다. 왕실 가문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갖고 있는 자들은 그 흐름 속에 뛰어들어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혹은, 잘못된 정보를 흘리는 용도로 쓰거나.

레이저는 금화 한 무더기를 내밀었다. 많지는 않았다. 시세를 왜곡시키지 않는 선에서 소문을 퍼트리기 충분한 정도였다.

“후안 가 측에선 돈을 충분히 모았나 보오?”

양탄자 가게의 사장은 주판알을 튕기며 장부를 살펴보았다.

“그렇소.”

“알겠네.”

그는 장부에 ‘후안’, ‘양탄자 한 필’ 같은 불완전한 문장을 대충 휘갈겨 썼다.

“오늘 오후에 보내놓지.”

“부탁드리오.”

사장은 레이저를 흘겨봤다.

“한 장 더 사는 게 어떻겠나? 그러니까 진짜 신상품 말인데.”

“가주님께 물어보도록 하지.”

레이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떠날 준비를 했다.

“기다리게! 말이라도 들어보고 가게나. 우린 성내에서 최고급 염료를 쓰고, 가장 뛰어난 직공들이 작업하고 있다네. 이 도안들을 보라고. 과감할 정도로 다양한 색깔과 동물들. 이건 그저 유행을 따라가는 게 아냐. 장인들 특유의 스타일과 디자인이란 말일세…….”

사장은 양탄자 진열걸이 옆에 서서 흥분한 채로 한 장을 꺼내 레이저를 향해 내밀었다. 하지만 그가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사장도 살짝 얼굴을 찡그리며 양탄자를 치웠다.

“괘념치 말게. 그냥 장사가 잘 안 돼서 그랬네.”

레이저는 그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왕위 쟁탈전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국정은 여전히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 와중에 가장 크게 피해를 입는 것은 결국 아래에 있는 백성들일 뿐이다. 왕실과의 관계가 돈독한 상인들이라 할지라도 왕위가 비어 있는 이 시기를 무탈하게 보낼 순 없는 노릇이었다.

“걱정 마시오. 내가 부탁한 일을 제대로 해내면, 전쟁을 곧 끝낼 수 있을 테니.”

그는 아무 말이나 입에 올렸다,

“휴, 그렇게 되길 바라네. 지금 와서야 하는 말이지만 일프 님이 옳았지. 왕위쟁탈전은 신경쓰지 않고 상단 일에만 집중해서 외국 상인들과 좋은 관계를 맺은 덕분에 시중의 혼란을 덜어주셨잖나.”

레이저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였다.

“일프 님의 후계자는 모두 요절했고 아내도 병을 앓고 있다 들었소. 왕위쟁탈전 따위에 신경쓸 시간이 없는 것도 이상하지 않지.”

“하지만 그의 식견이 결국 왕국의 경제를 살렸잖소. 세상의 정세는 계속 바뀌고 있으니, 규칙 역시 이를 따라 바뀌는 게 맞겠지. 그래야 우리들도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까…….”

사장은 탄식했다.

레이저도 시선을 내리깔아 독특한 무늬로 다양한 양탄자들을 바라보았다. 레이저는 그 중 비교적 작은 한 필을 꺼내들었다. 무척이나 정교하게 짜인 양탄자였다. 장미, 보석 그리고 화려한 기하학적 무늬가 그려져 있었고, 비취색으로 화려한 배경을 짜놓았는데, 그걸 보고 있으니 어쩐지 3호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이거 하나 주시오.”

“아이고, 고맙소! 가주님 앞으로 달아드릴까?”

“아니, 내가 계산하지.”

사장은 금세 싱글벙글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양탄자를 받아들곤 포장하기 시작했다.

“정말 고맙네. 뭔가 더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게.”

“그럼 요즘 일프 님의 현금 흐름 같은 걸 알려주시오. 어디에 투자했는지, 혹은 뭘 샀는지 같은 것.”

레이저의 눈빛은 쉬이 짐작하기 어려운 감정으로 번뜩였다.

“투자에 관심이라도 있나?”

“당연하지. 안 그런 사람도 있소?”

“뭐 그렇지. 요즘엔 외국 물건들을 들여오는데 열중하고 계신다고 들었지. 대부분은 태양왕국의 예술품과 회화고, 동방연맹의 공예품도 있네. 어디서 공급해오는지는 모르지만, 들여올 때마다 대량으로 가져온다고 하더군. 항구에 있는 그분의 상선을 보면 알 걸? 거의 전함만한 크기더군.”

“태양왕국의 예술품이라……검문 같은 건 어쩌고?”

“누가 감히 일프 님의 화물을 건들 생각을 하겠나? 게다가 인간들과 오랫동안 사이가 나빴다 할지라도, 모두 뒤로는 몰래 태양왕국 특유의 공예품을 애용해 왔잖나. ㅡ자네가 말하는 전쟁은 사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네.”

그 말이 레이저의 본능을 자극한 듯, 그는 방어적으로 비웃음을 흘렸다. 만일 전쟁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자신 같은 사람들이 겪었던 것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별 영향이 없다’는 말은, 저들이 병사들의 생명을 희생시켜 평화를 누려왔다는 소리가 아닌가?

“왕실의 피를 이은 도마뱀 일족이시면서도 정말 열심히 사시는군.”

레이저는 최대한 사장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다시 화두를 돌렸다.

“일프 님은 그쪽으로 유용한 인재들이 많으시니까. 분명히. 자자, 여기 양탄자 받아가시게. 이용해줘서 고맙네.”

레이저는 묵직한 양탄자를 받아들었다. 어쩐지 정보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아직 아무런 단서가 없었다.

만일 3호의 말이 맞다면 샤킬은 의뢰주를 배신했다. 곧바로 다이애나를 죽이지 않고 포로로 삼았다. 그리고 동시에 의뢰주와 후안 가에 이 사실을 흘려 양쪽에 경쟁을 붙였다.

각 가문의 동향을 살펴본 결과, 레이저는 야민 가의 시드니가 가장 의심스러웠다.

야민 가문의 권세는 후안 가보다 강했다. 하지만 세실리아 같은 다른 후보와 비교하면 여전히 크게 뒤처지는 상태였다. 시드니 측은 우선 가장 만만한 후안 가를 향해 움직이는 것 같았다.

때문에 가주 부부는 자신들이 ‘다이애나’의 몸값을 마련하여 되찾으려 한다는 가짜 소식을 퍼트리려고 하고 있었다. 실제로는 그들은 그저 이 기회를 틈타 자신들의 돈줄을 한바탕 정리하려는 것뿐이었지만, 그 행동이 납치범들과 의뢰자를 자극하긴 충분했다. 3호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의뢰자는 물러날 구석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후안 가가 몸값을 지불한다고 할지라도 절대 인질을 포기하려 들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한발 앞서 ‘다이애나’의 목숨을 사버리려 들 것이었다.

진짜 문제는 바로 샤킬이었다. 그는 도대체 어째서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이런 경매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로 인해 누가 이득을 취하고 있단 말인가?

한참을 고민하던 레이저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미 정답을 찾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