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건 광기에 젖은 규탄받아 마땅한 행위였다. 만약 그가 태양왕국에 있었다면, 분명히 붙잡혀서 극형에 처해졌으리라. 하지만 그는 이제 사막왕국에 속한 몸이 되었고, 뱀신과 법률의 은총을 받은 자가 되었다.

어떻게 도마뱀 일족에게도 받아들여지지 못한 레이저가 중급 군관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 그것은 누구든지 성혈 투기장에서 승리를 쟁취하기만 한다면, 어떤 광기어린 범죄마저도 법적으로 용서받고 사막의 일부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는, 법률조차 아이들에게 정의를 가르치지 않았다.

사자가 새끼양을 위해 눈물을 흘려줄 수 있는가? 모래가 목마른 여행자를 위해 샘물을 솟아나게 할 수 있는가? 이곳 수인들의 왕국은 자연선택의 법칙을 구현해낸 곳일 뿐이었다. 레이저는 자신이 벌인 짓에 대해 수치심을 느낀 듯 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런 생각과 동시에 울부짖는 소리, 울음소리, 혹은 동의할 수 없다는 읊조림, 그리고 미친 듯이 터져나오는 광소의 목소리들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ㅡ그랬다. 그는 생존법칙에 의해 보호받는 쪽에 선 자였다.

그런데도 어째서 구원받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그의 광기는 사라지지 않았고 마음 깊숙한 구석에서 잠든 채 이성에 의해 억제되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신기루’를 바라볼 때만 자신의 모순과 고통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3호. 유일하게 살아남은 행운의 아이.

보육원이 문을 닫은 뒤 그녀는 한동안 고통의 나날들을 보냈을 것이다. 당시 레이저는 성혈 결투장을 떠난 뒤 사막왕국에서 확고한 지위를 얻기 위해 바로 군대에 입대하기로 결정했고, 전쟁터에서 또다시 몇 년을 보냈다.

레이저는 전쟁이 끝나기만 하면 소녀에게 돌아가 함께 살기를 바랐다. 하지만 돌아온 그를 반긴 것은 부화소가 도산했다는 것과 소녀 역시 다른 사람에게 입양되었다는 소식이었다. 평범한 가정에 입양되었더라면 마지못내 그 사실을 받아들였을 것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왕실 가문이 소녀를 데려가 희생양으로 삼고자 하고 있었다.

좀 더 전장에서 빨리 돌아왔다면 운명을 바꿀 수 있었을까?

아니…….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너무 늦었다. 이젠 소녀를 어떻게 샤킬의 손아귀로부터 구출하느냐를 고민해야 했다.

레이저는 우울한 얼굴로 부화소에서 걸어 나왔다. 그런데 도마뱀 여인이 바깥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어디에서 났는지 담배를 들고 있었고, 잘 보이지 않는 콧구멍에서 담배 연기를 뿜어내면서 벽에 기댄 채 레이저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문은 끝났나요?”

도마뱀 여인이 미소를 지었다.

“돌아간 줄 알았는데.”

레이저는 그녀를 한 번 휙 흘겨봤다.

“전 폐허를 떠나고 싶다고만 했을 뿐이에요. 그 빌어먹을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곤 말한 적은 없다구요.”

“내가 무섭지 않나?”

“그게 왜요? 사막왕국엔 미치광이들이 없을까 봐요?”

도마뱀 여인은 웃는 것 같기도 웃지 않는 것 같기도 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꺼내려던 농담은 꾹 삼켰다. 확실히 오늘 레이저에게선 어떤 여유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은 여기서 가장 미친 사람이 아니니까. 전 진짜 살인마도 만나봤거든요? 당신은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살인을 쾌락으로 여기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모든 살인마가 쾌락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진 않아.”

“그럼, 적어도 지금만큼은 괜찮은 걸로 하죠.”

그는 비웃듯 조소를 흘렸다.

십여 년 전, 그가 아직 태양왕국의 징집병이었던 시절, 그때만 해도 왕국은 여전히 부유했다. 그래서 왕도에서 사는 자들은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전쟁이 변경의 병사들에게 얼마나 잔혹한 시험을 내리고 있는지를.

레이저는 시체에서 벗겨낸 옷가지와 무기 같은 형편없는 장비를 받았다. 모든 곳의 병사들이 제때 물자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모두에게 균등하게 분배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처음엔 레이저도 자신이 대단한 활약을 펼친다면,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징집병들은 단 한 번도 그런 대우를 받지 못했다.

레이저와 그의 전우들은 단 한 번도 중시된 적이 없었다.

훗날 도마뱀 일족의 포로가 된 뒤에야 그들이 미끼 역할을 맡기 위한 장기말이나 다름없는 부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사실은 부대장이 자신의 입으로 직접 밝혔어야 하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레이저는 도마뱀 일족의 장군이 연민어린 목소리로 폭로한 진실을 통해 이를 알게 됐다.

어쩌면 바로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레이저는 이제 더 이상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별할 수 없었다.

충성, 영광, 애국심은 모두 그저 표상적인 이유에 불과했다. 그는 피비린내 나는 전장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주위의 인간들과 도마뱀 일족들이 하나하나 쓰러져갔다. 재물과 옷가지는 함께 뜯겨나갔고, 피와 살은 독수리의 먹잇감이 되었으며, 남은 백골들은 인간과 도마뱀 일족을 가리지 않고 한데 모아 탑을 이뤘다. 그런 광경 속에서 어떻게 선악에 대해 논할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