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되었지만 수흐 가의 천막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소녀는 저들이 곧장 수흐 가문의 땅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샤킬은 그렇게 하지 않을 생각인 듯했다. 그들은 소녀를 허름한 흙집으로 옮겼다. 작은 방에 가두고 감시하려는 듯했다. 싸움에 서툰 다른 가신들은 계속해서 천막을 오가고 있었다.

혹시 샤킬이 후안 가 측에 발각될까봐 신중하게 움직이게 된 걸까? 순간 소녀는 후회했다. 그때 굳이 레이저를 들먹여 샤킬을 자극해선 안됐는데.

그들은 더 이상 소녀가 도망치지 못할 거라고 판단하기라도 한 건지, 간단하게 묶어두고 흙집 안팎으로 사람들을 보내두기만 했다. 소녀는 고개를 들어 텅 빈 방을 훑어보았다. 가구 하나 없는 방이었다. 환기를 위해 구멍을 뚫어 만든 작은 창문만 보였다. 하지만 너무 작아서 그곳으로 빠져나가긴 힘들었다. 게다가 창문 밖엔 수흐 가의 전사 두 명이 지키고 서 있었다.

소녀가 도망칠 방법을 강구하고 있을 때, 문 바깥에서 샤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녀는 즉시 벽 구석에 몸을 바짝 기대고 귀를 기울여 그의 목소리를 엿들었다. 평상시 샤킬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컸다. 특히 그녀를 놀리려 들 때는 한술 더 떴는데, 다른 사람들도 다 들으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는 문 밖에 선 채로 평소와는 다르게 목청을 낮추었다. 무척이나 진지한 말투였다.

“어떤가?”

샤킬은 분위기 있는 목소리로 가신을 향해 낮게 속삭였다.

“의뢰인 측도 몸값을 그 가격까지 쳐달란 제안엔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좀 더 달라고 하더군요.”

“말했잖나. 이삼일 밖에 못 줘.”

“그렇게 전달했습니다.”

“좋아. 후안 가 측은?”

“얌전히 돈을 내려고 하는 걸 보니 함부로 행동에 나서진 않을 듯합니다……듣자하니 시장에 사람을 보내 과감하게 경영하던 점포를 정리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돈을 모으고 있는 거겠지요.”

“시장에 누굴 보낸 거지?”

샤킬이 물었다. 하지만 가신은 침묵했다. 그걸 본 샤킬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련한 놈, 그게 가장 중요하단 말이다. 그것도 확인하지 않았단 말이냐?”

“가주님……그냥 여기서 다이애나를 죽이는 게 어떻습니까? 그렇다면 일도 더욱 간단해질 텐데요.”

엿듣고 있던 소녀는 갑자기 명치를 얻어맞은 듯, 식은땀을 주르륵 흘렸다.

“아직은 안돼. 아직까진 살아 있는 게 더 나아.”

샤킬은 더더욱 목소리를 낮췄다.

“나도 일을 간단하게 만들고 싶은 건 마찬가지지만, 다이애나를 살려주고 있는 건 우리들의 의지가 아니잖나. 잊어라.”

“죄송합니다.”

대화를 마친 샤킬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입구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 옆에 붙어 있던 소녀는 깜짝 놀라 다시 구석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고개를 처박은 채 피곤에 찌들어 잠든 시늉을 했다. 그 상태로 실눈을 뜬 채 문틈을 훔쳐보았다. 하지만 샤킬은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한참을 서 있다가, 아무 말 없이 떠났다. 소녀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곤 두 사람이 나눈 대화 내용을 되짚어봤다.

후안 가에서 나를 사려고 하고 있어.

그 소식은 소녀를 들뜨게 만들었다.

가주가 진짜로 돈을 내려는 건 아닐 것이다. 이건 메시지였다. 소녀가 계속 다이애나인 척 행동하라는 지시.

그런 지시가 떨어지자, 소녀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물론 지금 상황과는 적절하지 않은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어쩐지 격려를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