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탐욕스럽기 그지없는 놈. 비천하기가 평민과 다를 바가 없구나. 원하는 대로 똑똑히 보여주지.”

시드니는 흐릿한 눈썹을 치켜떴다. 그는 호위병 두 사람을 돌아보며 상자를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호위병들이 상자를 열어젖히자, 황금빛 금화가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다. 그걸 본 샤킬의 전사들이 잇달아 감탄을 터뜨렸다. 엄청난 양의 금화가 눈앞에 나타나자 순간 자제력을 잃고 만 듯했다.

“어디 한 번 검사해봅시다.”

샤킬은 목을 쭉 빼며 금화가 담긴 상자를 훑어보았다.

“이제 충분히 봤잖나! 움직이지 마라. 다가올 생각도 하지 마. 먼저 다이애나를 죽여. 상자는 그 다음이다.”

“뭘 그리 화내시오. 그저 보기만 했을 뿐인데.”

“빨리 죽이라고 말했지! 쓸데없는 말은 그만해라!”

소녀는 당장이라도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자칫 잘못하다가 정체가 탄로날까봐 그저 흐느낄 수밖에 없었다.

샤킬은 자신의 품속에서 들려오는 소녀의 울음소리에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탄식은 오랫동안 이어지지 않았다.

“미안하구나. 이번엔 야민 가가 이겨버린 듯하군.”

소녀를 향한 구애는 그저 시간을 죽이기 위한 짧은 유희에 불과했다는 듯, 무척이나 담담한 말투였다. 그는 한손으로 검을 높게 들어올리고, 한손으로 소녀의 몸을 꽉 붙들었다. 최대한 고통스럽지 않게 소녀의 목숨을 취할 생각인 것 같았다.

소녀는 힘껏 숨을 들이키며 질끈 눈을 감았다.

그때였다. 화살 한 발이 샤킬의 뒤에서 손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화살은 그저 검신을 스치고 지나갔을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칼을 튕겨내기엔 충분했다. 샤킬은 신음을 흘리면서 재빨리 자세를 가다듬으며 시미터를 꽉 움켜쥐었다.

“매복이다!”

“함정이었나!”

샤킬의 부하들이 고함을 내지르며 하나둘씩 무기를 뽑아 응전에 나섰다. 시드니의 안색이 순식간에 새파래졌다. 그는 호위병들 사이로 도망치며 소리쳤다,

“너무 빨랐잖아! 어떤 머저리가 벌인 짓이냐!”

또 다른 화살 하나가 날아들었다. 이번엔 확실하게 샤킬을 노린 화살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샤킬도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살기가 담긴 칼을 휘둘러 날아들던 화살을 허공에서 둘로 쪼개버렸다. 소녀는 깜짝 놀라 샤킬의 품속에서 소리를 내질렀다. 여전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수 없었던 소녀는 순간 샤킬에게 밀쳐져 바닥을 나뒹굴고 말았다.

“좋아, 애초부터 돈을 낼 생각 따윈 없었단 말이지!”

샤킬은 고함을 내지르며 시드니의 호위병들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양측 병사들은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며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시드니가 냉소를 지으며 뒤로 물러서는 사이, 상자가 아무렇게나 땅을 나뒹굴며 안에 든 물건들이 쏟아져 내렸다. 금화는 맨 위의 일부에만 깔려 있을 뿐이었고, 상자 아래엔 몽땅 아마포였다.

“이미 손해를 본 이상 네놈이 죽는 꼴을 봐야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굴욕을 어찌 넘어갈 수 있겠느냐!”

“그런가. 당신네는 이번에도 후안 가문에 잠입조차 실패했던 애송이들을 고용했나보군?”

샤킬이 왼손을 내뻗어 호위병 하나를 꿰뚫었다. 갈비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똑똑히 보여주지. 이런 머저리들을 고용했던 거야말로 바로 굴욕적인 일이었단 걸 말이야!”

그는 박장대소를 터뜨리며 칼을 휘둘러 도마뱀 일족 하나를 또 쓰러뜨렸다,

시드니는 호위병들의 보호를 받으며 계속 도망쳤다. 그러나 세 번째 화살이 노린 것은 샤킬이 아니었다. 가장 선두에 있던 호위병의 머리에 화살이 박혔다. 튀어 오른 핏방울이 시드니의 몸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