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저는 방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폈다. 조그마한 증거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시종들을 모두 불러 증언을 정리해보니, 할리파의 가주가 응급처치를 받고 난 뒤에도 상황이 여전히 좋지 않자 가신들이 두 패로 갈렸다고 해요. 제 아래에 있는 시녀가 방을 지나갈 때마다 방 안에서 옥신각신 말싸움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하더군요.”

“말싸움을 벌였다라……다른 가문의 가주에게 의탁하려고 했던 건 아닌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할리파 가문이 밀어주던 후보자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고, 가문의 힘도 꺾일 대로 꺾였으니 아랫사람들 입장에선 더 나은 길을 찾아보려고 했던 거겠죠.”

“그동안 할리파 측 가신들에게 접근한 가주들은 누가 있지?”

“우마르 가문. 겨우 5분 정도 안에서 머물렀다고 합니다만, 그 정도면 충분히 할리파의 가신들을 매수하고도 남을 시간이겠지요.”

시녀장은 하인들에게서 취합한 증언들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다른 가주라면, 일프……? 하지만 그자는 방 앞을 지나쳐 가던 중이었는데, 잠깐 조롱 몇 마디를 던지고는 떠났다고 해요. 상인 카파도 지나가는 길에 들러서 그들에게 장례비용을 크게 깎아주겠다고 제안했다더군요. 마지막으로 찾아온 건 아가씨였습니다. 하지만 아가씨는 원래 주방으로 가려고 했던 것이지, 방안으로 들어간 적이 없었을 거라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위문을 하러 방문한 자는 없다는 거군.”

“굳이 위문을 갈 필요가 있나요?”

시녀장은 당연하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전쟁에서 패배한 자들일 뿐이잖아요. 게다가 수흐 가에게 또 한 번 지기까지 했는데, 얼굴을 멀쩡히 들고 다닐 체면도 없을 걸요.”

“그러고 보니, 수흐 가에선 찾아온 자가 없나?”

“가신들 중엔 아마 찾아간 자가 있을 텐데, 가주는 계속 연회장에 남아 있었어요……왜 그 사람만 콕 집어서 물으시죠?”

레이저는 바닥에 깔린 카펫을 내려다봤다. 아직 닦이지 않은 혈흔이 남아 있었다.

“어쩐지 그자가 가장 미심쩍단 말이지.”

“흐음…….”

시녀장은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일부러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건가요?”

“그게 첫 번째 이유야. 두 번째는 그자가 공공연하게 가주님께 도전했다는 거다. 다이애나 아가씨를 납치할 만한 자라면, 상황을 재빨리 판단할 결단력도 있겠지만, 애초에 간덩이가 부은 놈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자는 우리 가주님과 사이가 좋은 데도요?”

“그래도 가장 좋다고는 말할 수 없지.”

시녀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 레이저의 심중을 헤아리려고 했다.

“그것도 그렇지요. 오늘 그자가 최고의 친구였다 할지라도 언제든지 배반할 수 있으니까.”

“당연하지. 이건 왕위 쟁탈전이니까.”

“아뇨, 이건 바로 저들 도마뱀 일족의 습성이에요…….”

시녀장은 한숨을 길게 푹 내쉬었다. 살짝 미소를 지은 그녀는 어딘가 조금 후련해 보이기도 했다.

“제가 이렇게 말해서 실망하셨나요?”

레이저는 눈썹을 치켜떴다. 그리고 속으로 살짝 경계심을 품었다.

“내가 왜 그걸 신경쓸 거라 생각하는 거지?”

“하지만 뭔가 기대하지 않았다면, 자발적으로 사막왕국의 병사가 되고자 했을 리가 없잖아요? 아, 레이저 씨. 괘념치 마세요. 이건 별 의미 없는 잡담일 뿐인걸요. 대답하고 싶지 않다면 무시해도 좋아요.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두셨으면 해요. 당신이 ‘이곳’에 있는 건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는 사실을요.”

“알고 있다. 왕위 후보자의 호위가 인간이라는 사실은 가주님의 명성에 분명히 영향을 미쳤겠지. 그래서 그 도마뱀 일족도 가주님을 향해 도전한 것일 테고.”

“전 가주님을 말한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시녀들 사이에서 말이에요.”

레이저는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경악어린 눈빛으로 시녀장을 돌아봤다. 그녀의 얼굴엔 미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마치 재밌는 구경거리를 보는듯한 시선이었다.

“어머, 당신도 부끄러워 할 줄 알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