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동의한 적 없어요!”

스스로도 왜 그렇게 다급하게 변명하는지는 몰랐지만, 어쨌든 얼굴이 새빨개진 소녀가 소리쳤다.

“신경 쓰지 마라. 모래에 발이 미끄러진 것뿐이니까.”

레이저는 손을 휘저으며 샤킬을 내리깔아보았다.

“이놈을 캐물을 필요는 없다. 일프가 이놈의 고용주야. 매복해 있던 석궁수들을 처리할 때 놈들이 모조리 자백했다.”

“크윽, 젠장! 쿨럭쿨럭……그놈들은 그저 용병일 뿐인데, 어떻게 일프에 관한 일을 알고 있단 거냐?”

샤킬은 자신을 겨눈 레이저의 칼을 노려보며, 배를 움켜쥔 채로 그르렁거렸다.

“안됐지만 시드니는 억울한 피해자인데다 입이 무척이나 싼 자였지. 일프는 왕위 쟁탈전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네놈과 작당해 시드니의 암살계획에 동참했겠지. 실제론 다른 목적을 갖고 있었겠지만 말이야.”

“하……그래, 하지만 네놈은 이 계획의 진짜 목적을 알아내지 못할 거다…… 카멜레온”

샤킬은 힘겹게 침을 내뱉으면서도 애써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왕위 쟁탈전을 망쳐놓는 건 그저 시작일 뿐이야. 일프는 더욱 대단한 거래를……노리고 있다고…….”

레이저도 음산한 미소를 지으면서, 샤킬의 뱃가죽 위로 칼을 겨눴다.

“내가 모를 거라고? 틀렸어. 네놈이야말로 알 수 없을 거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절대 알 길이 없을 테니까.”

“잠깐만요―!”

소녀가 황급하게 끼어들며 샤킬에게 추궁했다.

“일프와 대체 무슨 일을 벌이려는 거죠!”

샤킬은 소녀를 한 번 보고, 레이저의 표정을 돌아보았다. 그는 헛웃음을 터뜨리더니 히죽 웃었다.

“우린 항구에 중요한―”

레이저는 가볍게 혀를 찼다. 샤킬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칼로 그의 목을 힘껏 베어버렸다.

소녀는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다급하게 바닥에 쓰러진 샤킬의 시체를 끌어안으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하는 거냐?”

레이저가 낮게 으르렁댔다.

“적들의 목숨 따윌 동정할 생각은 아니겠지.”

“샤킬이 중요한 단서를 자백하고 있었잖아요!”

소녀가 다급하게 반박했다.

“그게 뭔지 궁금하지도 않은 거예요?!”

레이저는 미간을 치켜뜨면서 알 수 없는 불쾌감을 가까스로 억누른 채, 검을 칼집에 넣었다.

“필요 없다. 불필요한 정보야. 우린 이미 샤킬을 배후에서 부추긴 게 일프라는 걸 알아냈다. 그걸로 충분해. 나머지는 가주님이 결정할 일이지. 너, 언제까지 시체를 안고 있을 거냐? 빨리 일어나라.”

“어떻게 그 정보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어요? 항구에 뭐가 있는지 듣지도 못했는데!”

소녀가 버럭 소리쳤다.

“저놈이 입을 열기 전에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난 납치되지 않았으니까. 뒷조사를 하면서 많은 사실을 알아냈지.”

레이저는 삐딱하게 고개를 기웃거리면서 칼자루를 흔들어 소녀를 재촉했다.

“문제는 이미 해결됐다. 항구의 음모 따윈 없어. 넌 이제 안전해.”

소녀는 불안한 듯 그를 바라보더니,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걸음을 떼려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궁수들이 일프에 대해 털어놓은 게 아니었군요. 그렇죠?”

그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럴 리가. 그 궁수들이 뭘 알고 있었겠어.”

소녀는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하지만 레이저는 그저 가볍게 콧김을 내뿜으면서 무미건조한 태도를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