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떠오르자 샤킬 일행은 소녀를 끌고 약속된 교섭 장소로 향했다.

작열하는 태양빛은 시간이 갈수록 뜨거워져갔다. 주위엔 어떤 건물도 없었다. 보이는 거라곤 드문드문 자라난 사막 식물들과 말라붙은 물열매나무숲뿐이었다. 이곳은 사막 사이에 위치한 탓에 도시와 꽤나 떨어져 있었다. 메마른 땅엔 균열이 일어나 있었다. 갈라진 대지의 어두운 틈 속에서 들풀들이 억척스럽게 자라나고 있었다.

소녀는 발로 슬며시 땅을 쓰다듬었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생명을 바라보며 문득 연민이 들었다.

끌려오는 길에서 그녀는 더 이상 암구호를 듣지 못했다. 어쩌면 주위에 널린 사막나무들 틈바구니에 숨어 있을지도 몰랐지만, 과연 레이저나 다른 자들이 오긴 한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야민 가문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샤킬 휘하의 도마뱀 전사가 입을 열었다.

“으흠.”

샤킬은 턱을 매만지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시간을 가늠했다.

“상관없다. 잠깐 기다리지.”

샤킬은 소녀를 잡아끌었다. 동행한 전사들은 모두 여섯 명으로, 서로 등을 맞대고 서서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용맹하고 노련한 자들이었다. 그동안 줄곧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던 소녀의 등 뒤로 결박된 양손이 살짝 떨려왔다. 샤킬은 소녀의 반응을 놓치지 않고,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무심하게 비웃음을 흘렸다.

“어떻게 된 거지, 아가씨? 죽을 각오가 된 것 같지 않은데.”

흠칫 놀란 소녀가 소리쳤다.

“닥쳐요.”

“어이구, 이제 왔구만.”

샤킬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경쾌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다가오는 자들을 자세히 살펴보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뭐야, 가주님께서 직접 오셨군. 그것도 저리 많은 놈들을 데리고?”

샤킬은 숫자를 세는 시늉을 하더니 느긋한 태도를 취하며 말했다.

“아홉 놈, 열 놈……재밌군. 우리와 약속했던 사람 수랑 다르잖아.”

일행 중 키가 제일 작은 남자 도마뱀 일족이 호위병 무리에서 앞으로 걸어 나왔다. 흑색 가죽옷을 걸치고 시미터를 든 호위병들과는 달리 남자는 비단으로 된 아름다운 옷에 숄을 걸치고 있었다. 보석이 박힌 지팡이로 모래와 자갈로 된 땅을 짚으며 걸어 나오는 모습은 겉으로만 봐도 범상치 않은 신분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다이애나를 향해 인사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 그녀 앞에서 대놓고 얼굴을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았다. 시드니는 그녀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있는 힘껏 샤킬을 노려봤다.

“나는 다른 가문 놈들과 달리 뒤에 숨어서 명령이나 내리는 겁쟁이가 아니거든.”

시드니는 이빨을 드러내며 지팡이로 땅을 탁탁 내리쳤다.

“미안하게 됐소이다. 도련님을 놀라게 해드렸나 보군.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오. 이렇게 도련님을 위해 원하던 걸 갖고 왔잖소?”

“난 놀란 게 아니다, 이 빌어먹을 놈아. 이몸이 직접 온 건 네놈이 두 번 다시 흥정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지.”

그렇게 말한 그는 그제서야 소녀를 흘긋 쳐다보았다.

“아직도 다이애나를 죽여 놓지 않았다니, 또 무슨 짓거리를 벌일 셈이지? 잘 들어라. ‘네놈’들은 이미 날 가지고 놀았다. 두 번이나 당해주리라 여기지 마라!”

“아직 돈도 안 보여주셨으면서. 자자, 진정하시오.”

샤킬은 장검을 뽑아 소녀의 목을 겨눴다. 입이라도 벙긋거렸다간 그 칼로 망설임 없이 목에 바람구멍을 내버릴 것 같았다. 두려움에 질린 소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멈출 줄 모르고 흘러내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