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왕국에는 수많은 바자르가 있었는데, 그 중엔 ‘예술회랑’, 줄여서 예랑이라 불리는 바자르도 있었다. 시장의 모든 길목마다 양탄자와 포목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고, 수려한 문양이 수놓아진 수제 양탄자가 점포와 길거리에 잔뜩 진열되어 있어서 마치 길거리의 미술관처럼 보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반쯤 지하에 묻힌 건물들 사이로 난 길목은 시가와 광장을 연결하고 있었다. 아치형 지붕 끝부분엔 홈이 뚫려 있었는데, 그곳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드는 햇살은 마치 뱀신의 은총처럼 보였다. 하지만 건물들은 지어진지 무척이나 오랜 세월이 지난 탓에 그 위로 퇴적된 먼지와 오물들이 많았고, 햇살이 잘 닿지 않는 구석들은 특히나 사람들이 다가가기 꺼려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검은손들이 몸을 숨기기 딱 알맞은 곳이었다.

레이저는 후안 가의 용병들을 보내 계속해서 샤킬의 무리들을 뒤쫓으라는 명령을 내린 뒤, 자신만 홀로 예랑 바자르로 향했다. 그곳엔 레이저만이 아는 인맥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또 잠시 떠나 있는 것이 자신과 3호 모두에게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레이저는 땅에 닿을 정도로 긴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후드 끝자락엔 뿔 같은 장식이 달려 있어 그가 어떤 종족인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숨겨주었다. 레이저는 음울한 얼굴로 바자르를 빠르게 오갔다.

직감이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샤킬은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그러나 처리해야 할 자는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한 포목점 앞에 멈춰 서서 정교하게 짜인 각종 원단을 훑어보았다. 원단들은 무척이나 복잡한 기하학적인 문양들로 짜여 있었고, 자주색과 분홍색을 써서 만든 원단 끄트머리엔 금색 테로 마감되어 있었다. 요 근래부터 예술품에 비견될 만한 수공예품이 유행하기 시작한 탓이었다. 당장 이곳만 하더라도, 포목만 팔아서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었다.

“무얼 사러 오셨소?”

협소한 가게 안에 앉아 있던 한 도마뱀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것과 비슷한 양식의 문양이 있소?”

레이저는 한 원단을 매만졌다.

“있지. 원하는 색깔이 있소?”

“신전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잿빛을 원하오.”

도마뱀 노인은 눈을 깜빡였다. 표정엔 미동도 없었다.

“물건은 안쪽에 있소. 따라오시오.”

레이저는 그를 따라 가게 안쪽으로 걸어갔다. 숨겨진 문을 밀어젖히자, 곱게 포장된 각종 상품들이 층층이 쌓인 창고가 나왔다. 하지만 창고 안쪽엔 또 하나 숨겨진 문이 있었는데, 그 문을 열자 오색찬란한 빛이 쏟아졌다. 사설카지노였다.

왕국 최대의 크기를 자랑하는 ‘오아시스’ 카지노는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운영되는 곳이었다. 때문에 암암리에 운영되는 불법 카지노들과는 그 규모면에서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카지노 안엔 벌써 엄청난 숫자의 손님들이 들어차 있었다. 손님들은 각기 다른 입구를 통해 입장했는데, 그들이 지나온 입구가 곧 그들의 지위를 상징했다. 레이저가 알고 있는 것은 정문을 통해 들어오는 자들은 모두 벗겨먹힐 준비가 된 살진 양들이라는 것이고, 그 외에 나머지는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되는 손님들이라는 것이었다.

도마뱀 노인은 레이저가 앞으로 뭘 할 것인지 묻지도 않고, 조용히 문을 닫고 가게로 되돌아갔다.

사각형의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구석에 놓인 소파에 앉아 여자들을 안고 이야기를 나누는 손님도 있었다. 그들은 보란 듯이 물담배를 피워댔고, 가끔 내킬 때면 딜러를 불러 몇 모금 피우게 하기도 했다. 레이저는 연기가 자욱한 테이블들과 바를 지나 비어 있는 테이블에 앉아 뿔이 달린 후드를 벗었다. 이곳에 와서도 자신의 종족을 숨기기 급급한 자들은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기 마련이었다.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은 종족을 따지지 않았고, 돈만 있다면 누구든지 존중을 받았다. 계급을 무척이나 중시하는 사막왕국에서는 무척이나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카멜레온 씨.”

한 도마뱀 일족 여인이 레이저를 향해 걸어왔다. 새빨간 시폰을 몸에 두른 여자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새까만 생머리는 리본으로 묶어 가슴 앞에 늘어뜨렸고, 심혈을 기울여 염색한 꼬리 끝엔 은방울을 매달아 가볍게 꼬리를 흔들 때마다 청아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난 이미 후드를 벗었는데.”

레이저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안에 입은 갑옷은 벗지 않으셨겠죠.”

그녀는 손가락 끝으로 대담하게 그의 가슴을 훑어 내렸다. 옷자락 속에 숨겨진 갑옷의 무늬를 따라 손가락을 움직였다. 레이저가 안색을 바꾸기 전에 그녀는 손을 떼곤 우아한 자세로 앉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기분이 안 좋아 보이니, 농담은 여기까지 하도록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