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배반한 자는, 반드시 다시 배반한다.”

샤킬은 소녀를 노려보았다. 목소리도 갈수록 거칠어져갔다,

“레이저가 어째서 그토록 아가씨네 부모에게 잘 보이려고 든다고 생각했나? 단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나? 고작해야 인간 출신 중급 병사가, 어떻게 아가씨의 개인 호위가 되었는지 말이야. 인간은 모두 마음을 가지고 노는데 능숙한 놈들이지. 기만에 능하고, 마음을 유도하려들고, 비열하기 짝이 없는 행동들을 서슴없이 저질러. 일단 아가씨의 신뢰를 얻고 나면 그놈은 반드시 그걸 이용해 무언가를 저지르려고 했을 거야.”

소녀는 숨을 들이켰다. 샤킬의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진지한 표정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소녀는 다시 기억을 떠올리며 선생님과 자신이 함께했던 시간을 되짚어봤다. 그는 무척이나 음침한 사람이었다. 그는 매 순간 모든 것을 계산하고 있었다. 무력으로 승패를 가르는 전통적인 도마뱀 일족과는 전혀 달랐다. 그의 수단은 무척이나 교묘하고도 잔혹했고, 어떠한 영광도 존엄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게 바로 레이저를 상대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했다. 그는 전사가 아니었다. 그저 순수한 살수일 뿐이었다.

소녀는 레이저가 도마뱀 일족 사이에서 얻은 그 악명이 어디에서 기원한 것인지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레이저는 절대 절 배반하지 않을 거예요.”

“어째서지?”

“그가 후안 가문에 보여준 진심은, 당신 같은 진짜 배신자는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요.”

소녀는 단호하게 단정지으며 고고한 태도로 샤킬을 되돌아봤다. 그녀는 샤킬 같은 자의 이간질에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그래봤자 그의 계략에 빠질 뿐이다. 레이저가 믿을만한 자인지 아닌지는 그녀가 알아서 판단할 사안이었다.

샤킬은 소녀가 이렇게 반응해올 거라곤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주둥이를 벌리며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할리파 가의 가주를 찾아온 것이 아가씨가 했던 것 중 가장 멍청한 짓인 줄 알았는데.”

샤킬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소녀를 돌아보았다. 자신의 추측에 도무지 확신을 갖지 못하는 듯한 태도였다.

“그랬던 건가……정말 생각지도 못했어. 아가씨는 그놈과 한번 뒹굴기라도 했나보군, 맞나?”

“뭐라구요!”

소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말을 이렇게 곡해할 거라곤 예상하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해한다. 직접 이야기하긴 무척이나 체면 떨어지는 이야기이긴 하지. 크무트가 인간 노예를 특히 애호한다고 들었지. 그자가 여자 인간마저도 탐닉할 거라고 의심했었지만 말이지……아가씨도 같은 성벽을 물려받았을 줄이야. 미안하구먼, 진작 눈치챘어야 하는 건데.”

“시, 실례에요! 어떻게 그렇게 무례한 말을!”

순식간에 낯빛이 변한 소녀는 찢어질 듯한 고음으로 날카롭게 소리쳤다.

“샤킬!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죠? 말도 안돼요!”

“뭐가 말이 안 된단 말이야! 고작해야 호위병인데다 인간에 불과한 자를 그 정도로 신뢰할 수 있다면 뻔한 얘기 아닌가! 아니면 뭐야? 그놈이 그냥 체온으로 침대만 덥혀주는 걸로 끝난다고 말할 생각은 아니시겠지? 크하하하하!”

그는 다시 한 번 폭소를 터뜨렸다. 너무 웃겨서 참지 못하겠다는 듯 소녀를 향해 이빨을 들이밀 정도였다.

“닥쳐요! 당장 그 말 취소하세요! 어떻게 감히 우리를 이렇게 모욕할 수가 있죠?!”

소녀는 샤킬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어떻게 그리 생각하지 말란 거지? 왕실 사람들은 이쪽 방면으로도 무척이나 조숙하구만. 아가씨가 이런 소녀였을 줄은 몰랐군……응? 그래서 어떻던가?”

샤킬은 소녀의 가는 팔뚝을 꽉 움켜쥐었다. 은색 팔찌가 맑은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소녀는 침을 삼켰다. 샤킬의 비웃음 섞인 얼굴을 본 소녀는 하얗게 질린 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그는 엄청난 힘의 소유자였다. 그녀의 팔 정도는 손쉽게 부러뜨릴 수도 있었다. 소녀는 눈앞에 서있는 도마뱀 일족이 어떤 자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이……이거 놔요……!”

“좋지.”

샤킬은 순순히 손을 놔주었다. 그는 여유가 넘치는 거만한 표정으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고통을 삼키며 팔뚝을 움츠렸다. 샤킬의 도발적인 얼굴을 보며 화를 삭였다. 그녀는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손을 내뻗어 창살 밖에 서 있던 샤킬을 움켜쥐려고 했지만, 그는 간단히 옆으로 피하며 즐겁다는 듯 폭소를 터뜨렸다.

“해봐, 다시 한 번!”

샤킬은 소녀를 향해 손짓했다. 도무지 입을 다물 수 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마침 천막 안으로 들어온 가신은, 껄끄럽고 곤란한 표정으로 그 장면을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