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제가 먼저 묻죠. 샤킬. 전 아직도 당신이 왜 저를 납치했는지 모르겠어요.”

“내 이름을 기억해주고 있었군?”

샤킬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더니, 무척이나 흥미롭다는 듯 소녀를 훑어봤다.

“당연히 기억하지요. 직접 만난 적은 없어도 연회에 오신 손님들의 이름은 모두 기억하고 있어요. 지금껏 당신을 가주로 불러드린 것은 존중의 의미였죠.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네요.”

“호오……아가씨가 이토록 성실한 아이인 줄은 몰랐군.”

“비꼬는 건가요?”

“그럴 리가? 내가 얼마나 아가씨에게 탄복했는지 설명할 도리가 없을 뿐이야!”

그는 큰소리로 웃었다.

“그래, 아가씨에게 탄복한 만큼 도전하고 싶어진단 말이지. 나란 놈은 무척이나 직설적이라 쓰러트릴 가치가 있는 자는 절대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그러니까, 제 몸값이 중요한 건 아니란 건가요.”

“무슨 소리? 당연히 중요하지. 하나를 고른다고 나머지를 버려야 하나? 어떤가, 똑똑한 아가씨. 무슨 뜻인지 알겠나?”

소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자신의 떠넘김이 너무 나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소녀는 일부러 더욱 강경한 태도로 그를 노려봤다.

“제가 할 말은 하나뿐이에요. 제 몸값을 받게 되더라도 사막왕국에 머물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더 멀리 도망칠수록 좋겠죠. 감히 우리 부모님을 배반했으니까요. 그분들은 당신을 절대 살려두지 않을 거라구요.”

샤킬은 거세게 콧김을 내뿜으며 철장을 텅텅 두드렸다.

“초청할 자도 없어서 인간을 호위병으로 삼았던 그 크무트가?”

“레이저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뛰어난 자에요.”

살짝 멈칫했던 소녀는 곧바로 가슴을 꼿꼿이 세우며 말했다.

“재미없는 농담이로군. 그토록 중요한 연회 도중에 그놈은 아가씨 곁에 있지도 않았잖아? 그것 때문에 납치당했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그렇기 때문에 속죄하기 위해서라도 목숨을 걸고 복수하러 오겠죠! 어쩌면 벌써 우리를 뒤쫓아 오고 있을 거예요. 당신들 같은 무례한 작자들을 몰살시킬 준비를 하고 있을 걸요! 샤킬, 지금 와서 용서를 빌어도 늦었어요!”

“그걸 어떻게 증명할 셈이지?”

샤킬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꾹 눌렀다. 어린 아이의 치기를 감상하는 듯한 태도였다.

“레이저니까요.”

소녀는 이를 악물었다. 자신이 지금 다이애나를 연기 중이란 걸 잊어버릴 뻔했던 것이다.

“날 보호해준다고 말했다면, 레이저는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킬 거예요. 이유 같은 건 그걸로 충분하다구요.”

샤킬은 듣는 이의 머리가 어질할 정도의 웃음을 터뜨리며 자신의 허벅지를 몇 번이고 내려쳤다. 꼬리도 격렬하게 땅바닥을 탁탁 쳤다. 자신의 말이 그토록 비웃음을 당할지 몰랐던 소녀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한참이나 폭소하던 샤킬은 눈을 비비면서 쉰 목소리로 물었다.

“그놈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건가, 다이애나?”

“무슨 뜻인지 모르겠군요.”

소녀는 조금 움츠러들었다. 연기가 너무 지나쳤던 걸까?

“그놈은 절대 도마뱀 일족처럼 될 수 없어. 기껏 해봐야 카멜레온이나 되겠지. 대체 그 남자의 충성심을 어떻게 그토록 철석같이 믿을 수 있는 거지?”

샤킬은 탄식하며 말했다.

“놈은 태양왕국의 최전선에서 싸우던 병사였다. 포로가 된 뒤에도 감옥을 탈옥했지. 그리곤 한동안 추격대를 피해 길거리를 떠돌다 결국 제 발로 투항해 감옥으로 돌아간 놈이야. 아가씬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나?”

“난……조금이지만…….”

“그 얘길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모양이군.”

샤킬의 표정이 기이하게 변했다.

“다시 감옥으로 압송된 놈은 성혈 투기장의 시험을 통과하고 유일하게 사면된 죄인이었어. 하지만 그 이후, 그놈은 사막을 떠나지 않고 제 발로 병사가 되어 태양왕국과의 전쟁의 최전선에 나섰지.”

“그건 레이저가 우리 사막왕국에 충성한다는 증거가 아닌가요? 한 인간이 전장으로 돌아가 자신들의 동포를 죽이려면 얼마나 큰 결심이 있어야 하겠어요.”

소녀는 샤킬의 반응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는 레이저를 향해 과하게 적개심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물어보지, 다이애나. 자신의 나라를 배반한 자가, 아가씨라고 배반하지 말라는 이유가 있나?”

소녀는 곧바로 반박하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