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허둥대던 하사드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는 숨을 고르면서 망설이더니,

간신히 입을 열었다.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가게 해줘.”

“불가능해.”

“레이저!”

다이애나는 다시 비명을 내질렀다.

“뱀신께 맹세코, 만일 내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간, 당신을ᅳ!”

“입 닥쳐!”

하사드는 버럭 화를 내며 말을 끊었다. 칼날이 다이애나의 목에 더욱 깊숙이 파
 

고들었다. 금방이라도 피가 주르륵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해줘야 할 걸, 인간. 안 그러면 이 녀석을 죽일 거라고.”

“그렇겐 못할 걸. 그랬다간 정말로 살아날 구멍이 없을 테니까. 네놈은 암살자가

아니라 그저 시장에 내다팔 정보나 얻으러 온 놈이잖아, 그렇지? 그것도 살아 돌

아가야 가치가 있을 텐데. 어차피 아무도 네놈의 목숨 따윈 신경 쓰지 않을 테니.”

하사드는 쉬익- 소리를 내며 차츰 입을 다물었다.

“이건 무척이나 비싼 정보야……어느 가문에 팔아도 높은 값을 쳐줄 거라

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궁금한 게 있군. 어떻게 이곳까지 들어온 거냐?”

레이저는 손을 내저으며 천천히 두 사람을 향해 걸어갔다.

“누군가 네놈에게 길을 알려줬나 보지? 그러니 이렇게나 빨리 침실까지 도착했

겠지.”

“나, 나는……아니야, 이건 그저 우연히……”

하사드는 눈을 가늘게 떴다. 잔뜩 힘을 준 손에서도 점점 힘이 빠져갔다.

“우연이라고? 정말로? 하사드, 솔직히 말하면 목숨은 보장해주지. 맹세하겠어.”

하사드는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우선 레이저가 약속을 정말로 지킬 것인지, 그

리고 자신이 사로잡은 인질이 정말로 가치가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자신이 진짜 다이애나를 붙잡고 협박을 하고 있다면, 레이저는 긴장한 얼굴

로 먼저 인질을 놔달라고 해야 마땅했다.

진짜 다이애나인가……아니면 가짜……?

갈팡질팡하는 하사드의 모습이 모두 레이저의 눈에 들어왔다. 레이저는 하사드

의 표정을 자세히 뜯어보았다. 당황스러움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정말로 우연히 이곳까지 도망쳐 온 듯했다. 궁지에 몰린 탓에 어쩔 수 없이 다이

애나를 인질로 사로잡은 듯했다.

그렇다면, 가능한 한 다른 자들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끌어야 했ᅳ

“뱀신의 이름으로 맹세할게요! 전 진짜가 아니에요! 전 대역일 뿐이라구요! 제발

놔주세요!”

그러나, 다이애나는 레이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몸부림치

면서 비명을 내질렀다. 하사드가 자신을 놔주길 바라면서.

하지만 그녀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그 순간 하사드의 눈빛이 돌변했다는 것

이었다. 이성이 붕괴되는 순간의 광기와 같았다. 그에게 다이애나는 이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인질에 불과했다. ᅳ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레이저

는 등 뒤에서 암기를 꺼내 하사드를 향해 내던졌다. 하지만 그 정도는 도마뱀 일

족의 반응속도로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ᅳ하사드는 암기를 피하자마자 자포자

기한 심정으로 단도를 힘껏 내그어 다이애나의 목덜미를 베어버렸다.

레이저가 뛰쳐나갔다. 암기를 연거푸 내던져 하사드의 퇴로를 가로막았다. 동

시에 허리에 매어둔 장검을 뽑아들었다. 은빛 광채가 다이애나의 귓가를 스쳐지

나갔다. 하사드의 안면에 검이 파고들었다. 선혈이 튀어 다이애나의 몸을 붉게

적셨다. 그녀가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기운을 잃은 육체가 땅바닥으로

철퍼덕 쓰러졌다,

레이저는 바닥에 쓰러진 도마뱀 일족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다이애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를 품에 안은 채 한손으로는 목에 난 상처를

꾹 눌렀다.

“아가씨를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감히 날 상처 입히게 놔두다니……!”

“죄송합니다. 그래도 멍청한 놈이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원래대로 칼을 들었으
 

면 아가씨의 동맥을 베어버렸을 테니까요. 도마뱀 일족의 혈관은 인간보다 깊숙

한 곳에 있지요. 제가 놈에게 알려준 것은 인간을 죽이는 방법이었습니다. 하지

만 그건 도마뱀 일족에겐 통하지…….”

“입 닥쳐요, 레이저!”

다이애나가 울부짖듯 소리치며 흐느꼈다.

“네.”

레이저는 고개를 돌려 시녀를 바라보았다.

“와서 아가씨를 부축해드려.”

시녀는 아무런 의심 없이 레이저의 말대로 다가왔다. 그 순간, 레이저는 즉시 비

수를 집어 들어 시녀를 내찔렀다. 시녀가 땅바닥에 엎어지는 둔탁한 소리와 함

께, 레이저는 얼어붙은 다이애나를 안아들고 침실로 들어갔다. 레이저의 암구호

를 들은 3호가 마침 걸어 나오고 있었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 쓴 레이저와 다이애

나를 본 그녀는 충격에 사로잡혀 입을 벙긋거리며 멈춰 섰다.

“아가씨로 분장해 가주님을 찾아가라. 가서 하사드를 처리했다고 말해. 그리고

응급처치를 할 줄 아는 그 시녀장을 데려와라.”

3호는 레이저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아가씨’는 다치지 않았는데, 시녀장님을 어떻게 모셔오죠?”

“……문 밖에 쓰러진 시녀를 살펴봐달라고 해.”

레이저는 이미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생각을 마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