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하사드와의 수업은 별 일 없이 흘러갔다.

그들은 화려한 양탄자에 앉아 수업을 진행했다. 주위에 가득한 장미꽃은 싱싱

한 새 꽃으로 교체되어 있었고, 몸과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꽃향기를 가득 풍

겼다. 그 냄새를 맡으며 소녀는 바짝 집중하여 하사드의 수업을 들었다.

“아가씨께서는 왕위에 오른 이후의 일을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무슨 뜻이죠?”

“별 뜻은 없습니다. 다만 저희 수업도 슬슬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으니, 가볍게
 

생각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함이지요.”

하사드는 미소를 지었다. 그의 꼬리도 즐거운 듯 바짝 치켜들었다.

“오늘은 아가씨와 함께, 당신께서 어떤 왕이 되고 싶은지, 그리고 아가씨가 생각

하시는 왕이란 무슨 존재인지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3호는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곤란한 문제에 머리가 곤두서는 듯했다.

‘왕’이란 무엇인지 스스로도 잘 몰랐으며, 다이애나 아가씨가 ‘왕’을 어떻게 여기

고 있을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도, 그리고 이를

하사드 앞에서 어디까지 내비쳐야할지도 몰랐다.

그녀는 고개를 치켜든 채 생각에 잠겼다. 잠시 구석에 서 있던 레이저를 흘겨본

그녀는, 대담하게 자신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답안을 꺼내놓았다.

“왕이란, 학살자에요.”

“네?”

하사드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녀는 몸을 곧게 펴면서 다이애나가 그러했듯 남을 깔보는 태도가 섞인 미소

를 지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 아닌가요? 왕된 자는 백성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존

재예요. 자신에게 유리한 법률을 마음껏 제정할 수도 있고, 단 한 마디 말로 국가

의 미래를 뒤흔들 수 있지요. 사막의 약탈자들이 아무리 날뛰어봤자 고작 며칠

배를 두들길 뿐이죠. 시장에서 남을 착취하는 상인들도 세금을 내고 나면 입에

풀칠할 정도뿐이고요. 귀족들은 부유한 사람들이지만, 남들을 희생해야만 그 지

위를 누릴 수 있는 자들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누군가를 해한다고 한들,

그 숫자를 다 합쳐봤자 왕 한 사람이 해칠 수 있는 사람의 숫자만 못하지요.”

하사드는 들고 있던 책을 꼭 움켜쥔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왕은 나라에서 가장 죄가 무거운 자일뿐이에요. 따라서 백성들을 빈곤에서 벗

어나게 하고, 제도를 더 바르게 하여 사람들이 불합리한 처사에 의해 고통받지

않게 두는 것, 그것이야말로 왕이 자신의 무거운 죄업을 참회하는 길이죠.”

“……아가씨의 말씀은, 이치에 어긋나는 이야기는 아니군요.”

“제가 선생님을 놀래키는데 성공했나보군요?”

“아뇨……아니, ……사실 조금 그렇습니다. 하지만 정말 아가씨답군요.”

하사드는 이마를 여러 차례 닦아내면서, 억지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정말 예상 밖의 답변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부족한 게 있군요. 왕은

어떻게 해야 아가씨가 말씀하신 목표에 다다를 수 있겠습니까? 그거야말로 제가

아가씨께 여쭙고 싶은 바이기도 합니다.”

“그걸 어떻게 이룰 수 있겠어요?”

그녀는 눈을 깜빡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