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디쉬 가문은 97년에 달하는 역사를 가진 집안으로, 지금까지…….”

“틀렸어.”

아가씨가 눈을 흘겨 떴다.

“97년의 역사를 가진 오래된 가문은 무타 가라고 했잖아. 키디쉬 일족이 귀족에

봉해진 것은 고작 30년 밖에 안 됐어. 이건 기초 중에 기초지식이야. 적어도 각 가

문의 세력과 배경 정도는 다 외워야 하지 않겠니? 다시 해봐.”

“죄, 죄송합니다.”

다이애나가 얼굴을 치켜들었다. 살짝 불쾌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렇게 쉽게 사과하지 않아.”

“네.”

소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즉시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었
 

다.

‘……아직도 ‘3호’ 상태인 거야? 대역이 이렇게 반응이 느려서야 되겠어?’

다이애나는 입을 비죽였다. 그녀도 이젠 소녀의 문제점을 깨달은 것이었다.

“날 따라해야 할 때만 나처럼 행동하면 어떡해? 언제 어디서든 나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걸음걸이는 문제없어. 예법도 이젠 어느 정도 익힌 것 같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성격이 아직도 완벽하지가 않잖아. 그렇게 자신감 없는 표정으로 진

짜 날 완벽하게 따라할 수 있을 것 같아?”

“자신감……예전엔 괜찮았는데 지금은, 레이저 선생님 때문에……”

소녀는 웅얼거리듯 말했다.

“그러니까 레이저의 문제란 거야?”

다이애나가 눈을 반짝였다.

“아ᅳ아니에요! 선생님이 아니라, 제 잘못이에요!”

“넌 ‘나’야. 내가 레이저를 대하는 것처럼 너도 레이저를 대하면 되잖아.”

“하지만……그 분은 절 가르치는 분인 걸요……그럴 수 없어요.”

고개를 떨군 소녀는 의기소침해졌다. 다이애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리고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방안을 서성였다. 왕위쟁탈전에 참가한 뒤부터

대역의 상태가 너무 불안정해졌던 것이다. 그녀는 이제까진 별로 의식하고 있진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대역의 중요성을 차츰 깨달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레이저가 후안 가문에 들어오고서부터, 3호는 어쩐지 갈수록 소심해지

고, 툭하면 긴장한 모습을 보여줬다. 어쩌면……어쩌면 그저 착각일지도 몰랐지

만, 다이애나는 자신이 떠올린 일말의 가능성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레이저는 어떤 사람인 거 같아?”

다이애나가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은……엄청 엄격하신 분이에요. 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절 가르치고 계

세요.”

“그것 말고는? 우리 후안 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한다던지?”

3호는 골똘히 생각했지만, 레이저는 후안 가문에 대해 딱히 무슨 말을 한 적은

없었다. 애초에 소녀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레이저는 과묵한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두 주인을 섬길 법한 종류의 사람

은 아니었다.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셨어요.”

그녀는 결국 그렇게 말하기로 결정했다.

“그렇단 말은, 충성심을 증명할 방법이 없단 뜻이기도 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