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멍 때리지 마라! 목격자를 남겨둬선 안 된다!”

레이저가 갈라지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소녀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제야 창

잡이들이 도망치려고 하는 게 보였다. 그녀가 진짜 다이애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 챈 듯했다.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놈들을 뒤쫓기 시작했다. 하지만 레

이저가 더 빨랐다. 그는 바닥에 꽂힌 투창을 집어 들고 한 놈을 향해 힘껏 내던졌

다. 적중하지는 않았지만 도망치던 놈의 발걸음을 꼬이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소녀는 전력을 다해 땅을 박차면서, 품속에 숨겨두었던 두 번째 비수를 꺼내 놈

의 몸을 노리고 돌진했다.

도마뱀 일족은 입을 쫙 벌렸다. 날카로운 이빨로 가득한 주둥이로 소녀의 몸을

물어버릴 태세였다. 소녀의 몸집으로는 놈을 제압하기는 힘들었다. 대신 그녀는

양손으로 비수를 꽉 움켜쥔 채 온힘을 다해 쫙 벌어진 놈의 주둥이를 내찔렀다.

도마뱀 일족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녀는 전율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적

은 이미 절명한 뒤였다. 그녀는 뜨거운 체액을 흠뻑 뒤집어쓰고 있었다.

레이저는 전투와 살인에 익숙해지게끔 그녀에게 몇 번이고 사막의 동물들을 직

접 사냥하도록 강요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자신의 손으로 직접 동족의 생명을

끊은 것은 처음이었다. 숨이 가빠왔다. 머릿속으로는 자신이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지만, 몸은 그녀의 의지에 반항하기라도 하듯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진, 진정해야…… 두려움에 져선 안……

그녀는 두 손을 가슴께에 모아 쥐고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가주 내외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신을 연민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들의 시선

을.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코끝을 가득 메운 피비린내 대신 방안에 은
 

은하게 피어오르던 향유의 냄새를, 식탁 가득한 음식 냄새를, 저택 곳곳을 장식

하던 장미꽃 향기를, 그리고 잉겐 부인에게서 느껴지던 향수 향기를 떠올렸다.

이 모든 건 가주님들을 위해서야……그분들이 내게 베풀어주신 것에 보답해

야…… “……3호!”

레이저의 부름에 소녀는 깜짝 놀라 새된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두 눈을 부릅떴다. 레이저가 멀지 않은 곳에서 도망치던 창잡이를 발로

짓눌러 제압하고 있었다. 그는 흉흉한 눈빛으로 도마뱀 일족을 내려다보면서, 놈

에게서 빼앗은 투창을 그녀에게 내던졌다.

그녀는 날아오던 창을 붙잡았다.

“언제까지 시체 옆에서 주저앉아 있을 거냐? 이쪽으로 와라.”

레이저는 소녀의 감정변화를 느끼지 못한 듯, 그저 짓누르고 있는 도마뱀 일족

이 도망치지 못하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지금부터 이놈과 얘기를 나눠봐야겠다. 도망치려고 하면 바로 찔러버려.”

“찌르다니……어디를요?”

그녀는 허겁지겁 레이저 곁으로 다가왔다.

“놈이 고통스러워할 만한 데면 어디든.”

레이저는 코웃음을 치면서, 발에 더욱 힘을 주었다.

“소개하지. 여긴 내 제자다. 이쪽 방면으론 아직 경험이 미천한 덕분에, 아주 고

통스럽게 죽여줄 수 있다는 것 정돈 보장해주마. 어디 벙어리가 아니라면, 누가

네놈을 보냈는지 솔직하게 고백하는 게 좋을 거다.”